포므롤
포므롤은 벨벳처럼 부드러운 레드와인의 대명사이지만, 때로는 가장 비싼 와인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포므롤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곳 같다. 마을에 번화가라고 할 곳도 없고 작은 길이 교차하는, 아무 것도 없는 곳에 큰 성당 하나가 덩그러니 서있다. 거의 똑같이 생긴 평범한 집들도 길을 따라 군데군데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집들 모두 샤토라는 간판이 붙어있다. 포므롤은 이렇게 번잡한 세상과 동떨어진 신기한곳이다. 지질학적으로 이곳은 큰 자갈 언덕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살짝 있지만 전반적으로 매우 평평한 지역이다. 리부른 쪽은 모래땅이고, 생테밀리옹과 인접한 동쪽과 북쪽은 종종 점토가 섞여있다. 이곳 와이능ㄴ 가장 부드럽고 풍부하며 순식간에 마음을 사로잡는 보르도 레드와인이다.
최고의 포므롤 와인은 12년 정도면 자신의 모든 향을 발산하며 화려한 피네스가 생긴다. 5년만 지나도 충분히 매력적인 와인이 많으며, 나이가 들수록 고기향과 심지어 야생조류향이 더해진다. 포므롤의 왕은 이웃인 생테밀리옹보다도 살집이 있고 까다롭지 않으며 빨리 익는 메를로이다. 그 다음 풍종은 카베르네 프랑이지만, 블렌딩할 때 1/5 정도를 차지하는 보조적인 역할에 불과하다. 전통적으로 리부른의 북동쪽 고원은 따뜻한 대서양의 영향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있어서 만생종인 카베르네 쇼비뇽은 익기 어렵다고 여겨졌다.
복잡한 포므롤에 압도당하지 말고 이곳의 평균적인 기준이 매우 높다는 것만 알아두면 된다. 품질이 좋지 않은 포므롤 와인이 극히 드물지만, 가격이 싼 포므롤 와인도 드물다. 포므롤은 유명한 보르도 와인치고 매우 민주적이다. 등급이 없다. 사실 등급을 나누는 것도 쉽지 않은데, 가장 유명한 샤토들도 최근까지 보르도 바깥 지역에서는 낯선 이름이었다. 로마 시대부터 이곳에서 와인을 만들었지만, 20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장-피에르 무엑스라는 능력 있는 네고시앙의 노력이 있었다. 그는 내륙의 거친 코레즈 지방 출신으로 1930년대에 리부른에 정착했고, 와이너리를 하나씩 매입하며 무시할 수 없는 품질의 와인을 만들었다.
등급 분류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대부분의 샤토가 소규모 가족경영이고, 주인이 바뀔 때마다 포도밭에 변화가 생긴다는 점이다. 막강한 무엑스 가문의 경우 가지고 있는 많은 포도밭 구획을 계속 사고 팔았다. 토양은 자갈에서 자갈성 점토, 자갈이 섞인 점토, 또는 모래 자갈에서 자갈성 모래로 바뀌어 매우 복합적이다. 하지만 포도밭의 경계가 계속 변해서 그 복합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포므롤의 생산자 대부분은 1가지 와인만 만든다. 더해 봐야 어린 포도나무나 덜 좋은 구획에서 나온 포도로 만든 세컨드 와인이 전부다. 포므롤에서 가장 뛰어난 포도밭이 페트뤼스라는 것에 모든 사람이 오랫동안 동의해왔다. 페트뤼스는 장-피에르 무엑스의 장남이자 보르도에서 가장 막강한 네고시앙인 장-프랑수아의 소유다. 페트뤼스에서는 부자 세습을 선호하는 모양이다. 양조책임자였던 장-클로드 베루에의 아들인 올리비에도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계속되는 변화
그러다가 1980년대에 르 팽 Le Pin이 나타났다. 가까운 비유 샤토 세르탕과 우안에 꽤 많은 와이너리를 소유한 벨기에 출신 자크 티앙퐁이 원래 채소밭이었던 곳에 포도나무를 심으면서 전설은 시작되었다. 르 팽은 포므롤 기준으로 아주 작으며, 그 정도면 손으로 직접 재배하여 양조한 초특급 와인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와인은 모든 것이 과하고 매력도 과하다. 또한 이 모든 것은 가격에 반영된다. 페트뤼스보다 비쌀 때도 있고, 좌안의 1등급 와인보다는 언제나 더 비싸다. 르 팽과 페트뤼스 모두 건물과 셀러를 훌륭하게 신축했다. 최고급와인이 얼마나 잘 팔리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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